▶지롤라모 카르다노
지롤라모 카르다노(Girolamo Cardano)
1501. 9. 24. 이탈리아 출생 ~ 1576. 9. 21. 로마에서 사망.
본업은 의사였으며 수학자이자, 철학자이면서 점성술사, 도박사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친구이자 수학적 재능이 있던 변호사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그를 사산시키려 했다고 카르다노의 자서전에 쓰여 있습니다.
1520년 파비아 대학에 들어가 의학을 공부한 후에 파도바로 학교를 옮겨 약학을 공부했어요. 특이하고 배타적인 성격 탓에 친구가 거의 없고 졸업 후에 직업을 찾는 데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 지롤라모 카르다노 업적 ]
▸의사
그는 의학을 전공해 학위를 받고 결혼 후 수학교사가 돼 수학과 물리학을 연구하고 의사 생활을 했어요.
지롤라모 카르다노는 당시 유럽에서 알아주던 의사이자, 이탈리아의 천재 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함께 반드시 거론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답니다.
카르다노는 재판관을 치료해 줌으로써 평판이 높은 의사가 되고 돈을 많이 벌게 됩니다. 그의 소견은 재판장에게 신뢰를 얻기까지 합니다. 카르다노는 발진 티프스 (typhoid fever)를 처음 발견한 의사이기도 합니다.
• 최초로 장티푸스를 발견
• 천식 치료법 고안 : 먼지나 털 같은 비위생적인 것들을 치우고 영양식을 섭취
• 알레르기성 질환 발견
• 탈장 수술법 개발
▸수학자로서의 업적
2차 항이 없는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발견 : 스키피오 델 페로
1차 항이 없는 삼차방정식과 일반적인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발견 : 니콜로 폰타나 타르탈리아
• 3차 방정식의 해법 발표 (카르다노가 델 페로와 타르탈리아의 업적을 카르다노 자신의 업적으로 인정하는 글을 실어 해법과 함께 책으로 발표) : 카르다노
타르탈리아는 카르다노에게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알려주었으나 카르다노가 다음 해 논문으로 발표해 버린 것이라고 하지만 이에 대해 카르다노는 반론 내놓습니다.
카르다노가 검토해보니 타르탈리아의 해법에는 불완전한 점을 연구해서 완전한 형태로 보완한 해법으로 저서에 해법 자체는 타르탈리아가 맨 처음 발견했다는 언급을 해 놓았어요. 거기에 타르탈리아 이전에 페로라는 다른 학자가 1510년쯤 발표한 논문에 불완전한 방정식 해법을 먼저 발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해법도 카르다노가 다시 해결했습니다.
이 때문에 당대에 "카르다노의 정리"라고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3차 방정식을 위한 근의 공식은 허수 개념을 도입하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따라서 카르다노가 이 근의 공식을 완성하고 동시에 허수의 개념을 끌어낸 수학자임을 증명하는 일이었습니다.
타르탈리아는 그에게 서로에게 문제를 내서 못 푸는 사람이 지는 3차 방정식의 해법을 건 수학 경기를 신청하였고 카르다노의 제자 로도비코 페라리가 3차 방정식의 해법을 이용해 4차 방정식의 해법까지 구해내면서 결국 타르탈리아는 경기에서 지게 됩니다.
• 허수 개념의 도입 : 3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다루던 도중 음수의 제곱근의 필요성을 느껴 허수의 개념을 도입
• 확률론의 발전에 기여: 확률에 관한 최초의 저서인 ‘주사위 놀이에 대하여’
▸그 외 업적
• ‘천체를 제외하면 영속적인 운동은 없다’라고 주장
• 자기 현상과 전기현상의 구별법을 확립
• 암호학에도 큰 영향
• 기계ㆍ기재의 결합을 이루는 이음매인 카르단 조인트 발명 (공학에서도 재능) →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음
▸도박중독자
그는 도박중독자였습니다. <확률 게임에 관한 책> -″ 주사위 놀이에 대하여″를 만들어 도박을 잘하기 위한 공략집을 내놓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은 최초로 확률론을 체계적으로 다뤘습니다.
의사로 번 수입과 경시대회의 상금으로 도박을 하였고 대부분을 잃고 말았습니다. 특히 좋아했던 도박은 체스와 주사위 던지기였어요.
하지만 아무리 수학적 확률을 이용해도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었다는 것 '도박꾼이 가장 이득을 많이 보려면 도박을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실제로 카르다노 자신은 도박중독자처럼 도박을 끊지 못하여 일상생활을 망쳤다고 했습니다.
▸점성술사
카르다노는 자신이 1576년 9월 21일에 죽는다고 예언하고 증명하기 위해 그날 로마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예언을 달성하기 위해 단식을 해서 딱 예언한 날에 맞춰 죽은 것)
카르다노는 학자로서의 영예는 누렸으나 말년에는 행복하진 못했어요. 아내를 잃고 사랑하는 아들이 처형을 당하는 상황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는 "아들의 파멸을 지켜보며 나는 결국 노름을 끊었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학문보다 위대하다!"라는 말을 남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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