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데카르트 (1596.3.31-1650. 2.11)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 과학자, 근대 철학의 아버지, 해석기하학의 창시자
그는 합리론의 대표주자로 본인의 대표 저서 《방법서설》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계몽사상의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주체'의 근본 원리를 처음으로 확립합니다.
데카르트 일생
투렌 지방의 투르 인근 소도시 법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데카르트는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여 혼자 생각에 잠기는 습관이 있었고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철학가 기질이 있다는 여겨 ‘꼬마 철학가’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의 관계는 좋지는 않아 데카르트 스스로 아버지가 자신을 가장 싫어하는 아이라 말한 적이 있습니다. 형제들과도 정을 나누지 못하고 자주 집을 비웠으며 친구에게 의지를 하고 혼자 여행을 다니기 일쑤였습니다.
어릴 때 갖고 놀던 사팔뜨기 인형을 제일 좋아했었는데 성장해서도 장애인들에게 유독 호감을 보였습니다.
허약한 체질 때문에 1607년 늦은 나이에 예수회가 운영하는 라 플레쉬 콜레주에 입학했고 데카르트는 수학과 과학을 처음으로 배우고,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이론도 배우게 됩니다.
선생님은 데카르트를 똑똑하고 부지런하며, 내성적이지만 승부욕이 강하고 수학에 재능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학교의 구시대적 교육방식에 불만을 품었고 교과서를 잡다한 지식의 쓰레기라고 여겼습니다.
예수회가 운영하는 라 플레쉬 콜레주에 1606년에 입학하여 1614년까지 중세식, 인본주의 교육을 받게 되고 1626년부터 2년 동안 수학과 굴절광학을 연구하며 <정신지도의 규칙>을 썼지만 미완성하고 결국 1628년 말, 네덜란드로 돌아와 다시 저술 활동을 몰두하기 시작해 《세계론》을 프랑스어로 출판하게 됩니다. 1637년에는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의 세 가지 부분을 덧붙여《방법서설》에 익명으로 출판했다가 나중에 프랑스어로 《방법서설》을 완성하게 됩니다.
법학 대학에 입학하여 수학·자연 과학·법률학·스콜라 철학 등 배우고, 수학만이 명증한 지식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1616년 Licence를 취득합니다.
■ 수학자 ■
수학과 관련된 도박만이 그의 유일한 위로였어요.
1617년 어느 날 길을 걷던 데카르트는 벽에 붙은 광고지를 발견하고 광고를 네덜란드어로 적혀 있어서 내용을 알 수 없었으나 지나가던 네덜란드 대학교 교장의 도움으로 광고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광고는 어려운 기하학 문제를 푸는 사람에게 사례하겠다는 내용이었고 데카르트는 단지 몇 시간 만에 문제를 해결해 수학적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군대에 입대한 데카르트는 병영의 침대에 누워 천장에 붙어있는 파리를 보고 파리의 위치를 나타내는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다가 좌표계를 착안하기도 합니다.
데카르트가 발명한 직교 좌표계와 x, y라는 문자는 그가 처음 사용했어요.
직교 좌표계는 당시 유클리드의 기하학적 공간을 대체하였고 아인슈타인이 공간 개념을 새로 도입할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기하학과 대수학이 직교좌표 위에서 융합되었지요. 곡선에 대수 방정식을 이용하게 되었고, 과학과 수학을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고리를 만들게 됩니다. 라이프니츠와. 뉴턴이 미적분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데카르트의 영향 때문입니다.
방정식에 처음으로 미지수 X를 등장시킨 것도 데카르트의 업적이에요.
이렇게 기하학과 대수학의 결합으로 하나의 학문으로 연결하기에 성공한 데카르트는 더 나아가 모든 학문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통합하려 하였습니다.
모든 문제는 같고 보편적인 ‘수학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그 방법을 '보편수학’(지금의 ‘해석기하학’)이라고 불렀습니다.
■철학자■
하지만 철학의 진술은 수학의 진술처럼 아주 기초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하는데 그러한 단계에 도달하지 못해 철학의 기초를 확립하기 위한 회의를 거쳐 결국 모든 근본 중의 근본을 발견합니다.
다시 말해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토대를 발견했으며 이 토대 위에 하나의 새로운 철학의 체계를 세우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제1 원리인 유명한 코기토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입니다.
이 결론은 《방법서설》에 잘 나타나 있으며 이 명제는 근대 철학을 대표하는 명제로 데카르트 이후 근대 철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게 됩니다. 특히 데카르트가 사용한 ‘관념’이라는 개념은 칸트와 같은 철학자에게 영향을 주지요.
다른 스콜라학자들과 구분되는 점은 ‘신’보다 ‘인간의 이성’에 철학의 우선순위 두었다는 데 있습니다.
코기토 명제는 철학의 제1 원리를 생각하는 주체(코기토)에 두었다는 점에서 데카르트의 철학 사상이 기존 스콜라학자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644년 신플라톤주의와 스토아주의를 계승하고 데카르트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철학 원리》를 출판하게 됩니다. 후에 르네 데카르트는 다른 사람들에게 편지로 보냈던 최고선에 관한 생각들을 모아서 1649년 마지막으로 출간된 책이 《정념론》입니다.
데카르트는 폐렴으로 54세의 나이(1650. 2.11)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대별 수학자 > 중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세수학자 - 블레즈 파스칼 (0) | 2022.12.26 |
---|---|
중세수학자-피에르 드 페르마 (0) | 2022.12.20 |
중세수학자-지롤라모 카르다노 (0) | 2022.12.18 |
중세수학자 - 레오나르도 피보나치 (0) | 2022.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