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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수학자/중세

중세수학자 - 블레즈 파스칼

▶중세수학자 - 블레즈 파스칼

 

블레즈 파스칼(1623.6.19~1662. 8.19)

프랑스의 수학자, 과학자, 심리학자, 발명가, 신학자, 철학자, 작가.

블레즈 파스칼은 흔히 과학자나 수학자로 알고 있지만 그는 철학과 신학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주요 저서 : 팡세,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등

 

위퀴백과

 

블레즈 파스칼 일생

1623619일 프랑스 클레르몽페랑 지방에서 태어난 블레즈 파스칼은 아버지는 루앙의 세무공무원인 에티엔 파스칼이었습니다.

파스칼은 어려서부터 수학에 비상하였으나 허약하여 집에 있는 시간이 주로 많았어요.

아버지 에티엔은 파스칼의 수학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파스칼이 자연현상에 관심을 두도록 하였고 그가 수학을 가르치지 않았어도 오히려 수학에 흥미를 느끼고 가정교사에게 기하학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12세 때 삼각형의 내각이 180도라는 사실을 파스칼 스스로 알아내 주위를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이를 계기로 아버지는 어린 파스칼에게 기하학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을 주고 격려하였습니다.

 

블레즈 파스칼은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수학적 재능이 뛰어났어요.

☞13세 때는 블레즈 파스칼의 삼각형을 발견.

☞14세 때는 프랑스 수학자 단체(현재 프랑스 학술원)의 주 정기 회동에 참석

☞16세 때는 사영기하학의 기초가 되는 블레즈 파스칼의 정리를 증명

☞17세 때는 블레즈 파스칼의 정리를 이용하여 명제 400개를 유도

☞19세에는 최초 계산기인 파스칼 라인을 발명 ( 회계사인 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서 최초로 톱니바퀴를 이용한 최초의 기계식 계산기)

☞21세 때는 수은기둥을 사용한 일련의 실험으로 유체의 압력과 부피에 관한 기초를 다지는 파스칼의 법칙을 완성

 

▸파스칼의 주요 업적

■수학■

'파스칼 삼각형': 수학에서 이항계수를 삼각형 모양의 기하학적 형태로 배열한 것

 

'파스칼의 정리': 사영기하학의 기초가 되는 정리

 

어떤 원뿔 곡선에 내접하는 육각형 ABCDEF의 변을 연장시킬 때, ABDE의 연장선의 교점을 M, BCEF의 연장선의 교점을 P, CDFA의 연장선의 교점을 N이라 했을 때 M, N, P는 모두 한 직선 위에 놓인다.

여기서 M, N, P가 놓이는 직선을 파스칼의 직선이라 합니다.

 

'파스칼 라인': 세계 최초의 계산기

파스칼이 발명한 세계 최초의 계산기입니다. 흔히 이 계산기는 파스칼 라인이라고 불립니다. 파스칼 라인은 초기에는 산술기기또는 파스칼의 계산기라고 불렸어요. 처음에 수동계산기는 덧셈과 뺄셈만이 가능했습니다.

이 장치는 기어로 연결된 바퀴 판들로 덧셈과 뺄셈을 했고 첫째 바퀴는 첫째 자리, 둘째 바퀴는 둘째 자리, 셋째 바퀴는 셋째 자리 숫자를 나타냅니다. 각각의 바퀴에는 눈금이 열 개씩 있고 눈금 10개가 모두 돌아가면 다음 자릿수의 바퀴가 돌아가게 됩니다.

 

■과학■

물리학에서도 천재성을 발휘합니다. 토리첼리의 실험을 이용해 진공의 응아재성과 유체정역학의 문제들을 연구했고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유체정역학의 기초를 닦은 파스칼의 업적은 후세에 인정받아 압력의 SI단위가 그의 이름을 따라 파스칼(Pa)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토리첼리가 고안한 수은 기압계는 대기압이 높을수록 수은기둥의 높이가 높아집니다. 물 대신 수은을 이용해서 같은 실험을 했는데 토리첼리는 기압의 영향과 진공의 존재를 주장하며 정확한 해석을 제시했어요. 그러나 그의 실험을 재현하지 못한 마랭 메르센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파스칼은 다양한 방법으로 토리첼리의 실험을 하면서 더 명확한 결론을 얻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루앙의 뛰어난 유리 제작 기술에 힘입어 1647 1월과 2월 여러 모양의 관을 이용해 실험할 수 있었고 어떤 관은 12미터나 되어서 배의 돛대에 고정해서 실험했다고 합니다.  봄 파리에서 1647년 이 실험들이 알려져 메르센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에 의해 행해졌습니다. 16478월에 진공에 관한 견해에 처음 출간되면서 그의 실험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파스칼의 실험들

파스칼은 건강이 나빠져 루앙을 떠나 1647년 여름 파리로 이사를 했어요. 923, 24일 그는 데카르트와 진공 존재에 관한 논쟁을 벌이고 10월 파스칼은 진공에 대한 새 실험이라는 논문을 썼습니다.

파스칼은 진공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했습니다.

한편, 그의 논문을 읽은 데카르트의 친구 노엘이 토리첼리 관의 윗부분은 유리의 미세한 구멍들을 통과한 공기라고 주장하며 반박했습니다. 파스칼은 자신의 실험과 결론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제시했으나, 노엘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논문에 대한 반박문을 발표했어요. 그러나 이 논쟁은 파스칼의 계속되는 반론에 노엘이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여 끝나게 되었습니다.

 

'진공 안의 진공' 실험

파스칼은 파스칼의 실험”(1648.9.19)을 정리했습니다. 친척인 페리에와 함께 퓌드돔 산을 올라가 고도에 따른 수은기둥의 높이 변화를 관찰하고 같은 해 가을 실험 결과를 정리해 논문을 작성했어요. 파스칼은 고도가 높아지면 수은기둥의 높이가 낮아지는 데 이것은 공기가 무게가 있고 진공이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후 파스칼은 진공보다 유체정역학의 법칙과 기압을 연구하는 데 시간을 더 보내고 파스칼이 죽은 후 페리에에 의해 액체의 평형에 관한 논문집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파스칼의 원리를 비롯한 유체정역학의 중요한 법칙들, ‘진공 안의 진공실험, 파스칼의 실험이 논문집 속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파스칼의 원리

밀폐용기 내부의 움직이지 않는 유체의 일부에 압력을 가하면 그 압력이 유체 내의 모든 곳에 같은 크기로 전달된다는 것으로 파스칼은 이를 이용해 수압 프레스를 만들었습니다.

 

■철학 및 신학■

파스칼이 23세일 때, 파스칼의 아버지는 사고로 인해 엉덩이뼈를 다쳤습니다. 기독교 신자였던 접골사 데상 형제가 집에 머물면서 아버지를 치료하는 동안 파스칼은 이들의 영향으로 기독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1654년 파스칼이 기독교에 빠져 있을 때 결정적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목소리를 들었다며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글을 썼는데 지금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저서■

팡세

신학적 업적 중 가장 특기할만한 것이 바로 팡세입니다.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점과 같은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팡세는 그가 죽을 때 아직 미완성이었습니다. 책 속에는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의 변증법에 의해 기독교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저술했습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몽테뉴와 같은 회의주의자들과 데카르트 같은 합리주의자에 대해 자신의 변론을 펼치며 사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블레즈 파스칼은 예수회와 로마 교황청에서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어요.

예수회로부터 이단으로 지목받아 탄압받던 얀세니즘 성직자들을 변론하며 쓴 책이 바로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당시 예수회와 교황청에게 공격받는 장세니즘 성직자들을 옹호하는 시골에 사는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입니다. 그는 상대를 납득시키는 기술, 대화술, 상대의 마음에 드는 기술, 풍자와 아이러니 등 수사학을 사용해 예수회를 비판합니다. 특히 명예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살인도 허용하는 예수회에 이렇게 충고합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는데도 명예나 재산의 상실을 두려워하여 살인을 허용하거나 묵인하는 법률은 결코 없습니다. 신부님,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그렇게는 하지 않습니다."

'시골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다양하고 간결하고 꼼꼼하고 명확한 문체로 쓰였는데 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니콜라 부알로(프랑스 문학 비평의 창시자)는 이 작품이 프랑스 근대 산문의 출발점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는 신학, 철학에 기초한 사상으로만 유명한 책이 아니라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 루소의 문체에 영향을 끼쳤을 정도로 문학상 가치가 위대합니다.